날 고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던 전 애인과 화해했다.
화해한게 맞을 거다.
구렁텅이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한번 경험했던걸 반복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거늘^^;)
내가 그를 용서했다.. 는 말은
나만 피해자라는 밑도끝도 없는 피해의식과 착한여자 콤플렉스, 과대망상의 망망대해에서
허접한 접영으로 헤엄쳐 나와 해변가에서 한가롭게 썬탠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너 내가 용서한다" 조낸 멋있게 말하고 돌아서서 내 갈 길을 가련다하지만 결국 다시 망망대해 앞에 서게되는, 뭐 그런 말이다.
시간이 지나니 그 놈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면서
그 놈도 어떠한 이유에서건 날 미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를 그리워 했다기 보다
그냥 만나서 농담따먹기 하면 참 좋을텐데 왜 우리가 굳이 이렇게 서로 참아야 하는지
몇년이 지나니 억울한거다.
그 놈은 사실 나랑 농담따먹기 궁합이 좀 맞는 편이다.
그 놈도 나도 종종 이상한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죽이 잘 맞는다.
그래서 농담을 한번 툭 던졌더니 이 놈이 빼지도 않고 훅 받아 먹더란 말이다.
그 동안 심심했단다.
얼굴만 봐도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급소를 뻥 차버리고 싶을 정도로 밉던 놈이
친구들이랑 티브이보며 신변잡기 늘어놓을 때 처럼 편안해서
무장해제되더란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놈을 완전히 이해해서라기 보다,
서로 포기하지 못한 지점이 생긴 것이다.
그 놈이 가진 면과 내가 가진 면이 교묘하게 일치하는 어떤 한 부분이 크게 부각되더란 말이지.
나는 그 부분을 왠지 잃고 싶지 않았다.
그 부분만 취한다면 나름대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냐 이 말이다.
물론 이 생각들은 서로에게 아무 미련 없다는 확신하에 성립되는 것들이고
서로 합의 하에 친구가 된 거니까 얄팍한 것도 아니다.
결론은 그와 난 화해한게 맞다.
예전엔 무슨 순정이 그리도 차고 넘쳤던지 그 놈에게 참 고운 존대말만 골라서 쓰고. 아우 생각하면 오그라든다.
애인이었던 건 잊고
이놈저년 하면서 심심하면 농담따먹기 하고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