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난한 것, 중간, 눈에 안 띄는 게 좋다. 하지만 티 안 나게 남들 틈에 섞여 있으려면 그들과 똑같이 기본적으로
뭔가를 웬만큼 갖춰야 한다는 게 문제이다.
이사 때만 해도 그렇다. 거의 이삼 년에 한 번씩 엄마와 둘이서 수많은 이사를 했는데,
언젠가부터 남자 어른이 없다는 점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종이상자 속에 꼬박꼬박 모아온 나의 전 재산 중 지폐만 모조리 없어져버린 일,
이삿짐 트럭이 내 자전거를 그대로 싣고 가버린 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점심값을 요구하거나 사다리 비용 같은 걸 흥정할 때 으레 엄마한테 반말을 하고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쩔쩔매게 만드는 짓궂은 아저씨들이 적지 않았다.
짐을 옮기다 말고 욕실에 들어가서 웃통을 벗고 머리를 감는 아저씨도 봤다.
또 엄마와 내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 경비 아저씨들은 유난히 참견하고 잔소리를 하려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들이 왜 그렇게 우리에게 무례한가 생각하곤 했다.
부자연스럽게 과장된 친절도 속으로는 크게 다를 것 없었고.
물론 좋은 아저씨들도 많았다. 하지만 누구나 다 부당한 취급을 받았을 때의 기억이 더 안 잊히고 오래가는 거 아닌가.
만약 남자 어른이 있는 집이었다면, 엄마가 열시 넘어까지 침대에서 못 일어나는 싱글맘이 아니고 깐깐한 주부 스타일이었다면,
그리고 우리 집이 오십 평쯤 되는 큰 집이었다면,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화분이나 양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남자어른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 소년, 연우의 생각.-
전주교보문고가 18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이사준비를 하는 집에 굳이 찾아온 귀찮은 손님같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책을 할인하고 있었다.
새의 선물때문에 은희경을 좋아하는 터라 이 책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나무의 포인트 도움과 할인 덕으로 4,000원에 구입한 책. 전주교보문구점에서 마지막으로 구입한 책.
'소년을 위로해줘'를 읽기 시작했다.
싱글맘과 사는 연우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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