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아타'의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된 '공'과 '무'라는 용어로 인해
많은 서양의 사상가들은 불교를 허무주의적인 종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불교신도들은 죽고 사는 문제에마저 무감각한 무리라는 오해도 생겼다.
불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염세주의를 조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원한 행복을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무지함- 감각과 선입관에 의존하는 세상의 경험-으로 인해 사물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일상세계 너머의 영속성을 보지 못 한다.
계속 그런 무지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한 우리는 존재의 굴레 속에 갇혀버리게 된다.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세계의 실체를 부인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시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사물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영역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고 숨을 쉬기 위해 공기를 필요로 한다.
중요한 문제는 과연 어디에 중점을 두는가이다. 감각기관에 의해 인지된 세계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종류의 빛을 통해 바라보라는 것이다.
부처는 우리의 감각과 한계성에 의해 만들어진 이 세상 너머에서는 현상의 세계가 역동적인 변화 속으로
녹아들어간다고 가르쳤다.